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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결혼에 대한 이야기

by 이서말 2022. 2. 27.

결혼은 사회 편의 또는 유지를 위해 인간이 고안한 제도다.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물건들처럼 결점이 있고 함정이 있다. 개량되는 다른 물건처럼 더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또는 시대가 바뀐다면 결혼 또한 사라질 수 있고 형태가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공고한 신화가 있어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미래의 첨단기술의 발달로 그런 변화는 촉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명이 매우 늘어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유전자 치료, 노화 방지 기술로 젊은 몸을 유지하면서 1,000년을 살게 된다면 한 사람과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자녀를 일단 다 키우고 나면 노년의 쓸쓸함을 동반자로서 위로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녀를 키우는 미션을 해결하고도 활력이 넘쳐서 제 2라운드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새로운 파트너와 다른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또 다른 예를 상상하면,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로봇이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로 조만간 도래할 미래로 생각된다. 그런 인공 지능이 어느정도 인간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파트너로서의 역할 정도는 인간과 비슷한 흉내만 낼 수 있어도 가능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결혼을 기피하게 될 지 모른다. 외형적으로 사람과 구별할 수 없고 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로봇이 있는데 굳이 돈 많이 드는 '인간과의' 결혼을 할 리가 없다. 물론, 사람이라는 것이 로봇과는 다르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결혼은 영 남는 장사가 아닌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그린 미래 사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진다. 아이를 출산하고 길러내는 역할은 모두 기계와 시스템의 차지가 되고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 야만인 세계에서 길러졌으나 문명을 동경하던 원주민 존은 알파인 레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하여도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킬 수 없다. 레니나 역시 존을 매우 좋아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할 수 없다. 자유롭게 만나 아무나하고 일상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세계를 존은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그의 머리 속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관념이 박혀 있다. 
 
이런 미래 사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 진행형의 결혼 역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적 이유이든 육아의 고단함이든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싱글의 삶을 즐긴다. 결혼을 한 많은 부부가 일탈을 꿈꾸고 불행해 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서로 사랑했고 행복하기 위해 했던 결혼이 불행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에서 정민과 희은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때문에 독신주의를 고집하지만 어쩌다 보니 희은이 임신을 하게 되고 부모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결혼했다. 하지만, 육아와 경제적인 문제로 너무도 고단한 생활을 이어간다. 정민은 번번이 임용고시에 실패하면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부품조립 공장에 취직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게 되고 희은은 끊임없는 육아에 지치지만 자신의 경력을 유지하려고 정민이 퇴근하면 번역일을 계속했다. 희은을 위해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정민은 집안일도 보조했다. 
고단한 현실에 차츰차츰 서로에 대한 미움만 쌓여가던 때에 희은은 정민의 일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 일기장에는 죽고 싶다고. 꿈도, 사랑도, 미래도, 아무것도 없다고. 의무뿐이라고. 죽고 싶은데 죽을 수도 없으니 자신을 못 죽게 하는 모두를 없애고 자신도 죽고 싶다고. 쓰여 있다. 
데이트 폭력 목격자로서 트라우마가 있는 희은은 공포감을 느끼며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정민씨, 우리는 결혼이 아니야. 결혼을 했을 뿐이지 정민 씨도, 나도 결혼이 아니잖아. 우리가 미워해야 하는 것은 서로가 아니고 제도야. 한사람이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기 위해 끌고 갈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비명을 지르고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는 동안 다른 사람은 고립되고 배려 받지 못한 채 묵묵히 시들어가야 하는 구조는 잘못이야. 내가 정민 씨의 자리에 있고, 정민 씨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정민 씨도 상처를 받았겠지. 나는 정민 씨 덕분에 내일을 비교적 많이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돌려줄 수 없는 배려를 받고, 정민씨는 계속 참고, 그러다가 정말로 더 나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정민 씨는 나와 함께 있는 동안 결코 꿈을 이룰 수 없을 거야. 
 
정민은 부당하다 느끼고 거부하지만 결국 두사람은 갈라선다. 초록(아이)이 엄마와 같이 살기로 결정하면서 양육은 엄마가 맡기로 한다. 정민은 이혼한 해에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목표하던 대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됐다.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희은과 결혼하기 전에 살던 자취방보다 조금 더 넓은 원룸을 얻어 지낸다. 
 
가까운 친구들은 희은을 욕했다. 정민을 가엾게 생각했고, 그가 피해자라고 해주었으며, 보란 듯 잘 살라고, 꼭 초록을 되찾으라고 말해주었다... 희은을 떠나자 그의 꿈들은 쉽게 이루어졌다. 조금씩, 그는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소리를 질러도 됐다. 성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필요도 없었으며, 누군가 어지럽혀놓고 치우지 않는 물건들 때문에 한숨을 쉴 일도 없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희은이 없어도 자신이 제법 오래,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차가워진 자기 마음에 놀라움을 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든 순무(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맥주를 마시면서 혼자 영화를 보았다. 밤은 길었고 그런 밤은 처음이었다. 그는 작은 방을 채운 조용하고 소박한 모든 것들을 친밀하게 느끼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의 소망에 대해, 욕망에 대해, 삶이 자신에게 주기를 바라는 구원과 보상들에 대해. 그는 한 모금씩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책의 주장은 모든 결혼에 대한 부정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희생과 배려로 이루어진 결혼은 가족 구성원 모두 불행하게 만든 다는 것이다. 정민과 희은 모두 이혼을 통해 자신을 삶을 되찾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결혼의 전면적 부정은 아니고 형식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다른 방식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남자였으면 천하의 개쓰레기라 칭해졌을텐데 희수가 여자라 그런 비난을 비껴간다. 한 명의 부인과 두 명의 남편이 같이 산다. 질문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희수는 두집 살림을 거뜬하게 잘해내는 슈퍼우먼으로 그려진다. '두 명의 배우자에게 소홀하지 않게 충분히 잘해낸다면 두 명의 배우자와 같이 살아도 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인데 비현실적이기는 하다. 
 
부부란  <문정희>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에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년이 지나도 남은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 보는 사이이다
 
서로에게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죄 없는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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