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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배우자 선택에 대해

by 이서말 2022. 4. 18.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많지만 결혼을 한다면 누구와 하는 지, 결정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고 낮추는데 결정적이다. 어떤 결혼은 서로를 위해 하지 않았어야 하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속사정을 누가 다 알겠냐만서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커플이 상처를 주며 깨지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운명의 짝을 만날 수 있겠는지 궁금하다.

 

운명이 존재하는지부터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 번의 선택을 거쳐

 

근래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은 없지만,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는 힘들다. 이런저런 조건을 늘어놓아도 꼭 비는 것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복잡한 설명을 덧붙이다 보면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타나토노트>에 보면 미카엘이 천생연분의 낯선 여자에게 전화 거는 장면이 나온다. 미카엘은 수화기에 나요.” 하고 말하는데, 상대편의 여자는 오랫동안 기다렸다며 울먹인다. 이 두 사람은 생면부지의 사람이고, 어떤 약속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영계를 탐사하는, 동료인 라울이 천사로부터 얻은 정보에서 사실 두 사람이 전생에서 안타까운 사랑을 한 연인이었는데, 그럴 경우 내생에서 그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알아낸 연락처로 미카엘이 전화를 걸었다.

이것은 대단한 판타지 아닌가?

어느 늦은 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자에게 운명을 느껴 나 모르겠어요?”라고 물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하고 서로 사랑을 한다면 말이다. (물론, 호러로 바뀔 위험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면서도 이것이 진짜 나의 인연일까, 어딘가에 더 완벽한 내 짝이 있지 않을까에 대해 의심한다. 또는 상대가 나를 백 퍼센트 사랑하고 진정으로 대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실제 인연이라고 해도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처럼 극히 얼마 안 되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그래서 서로 인연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은 모두가 꿈꾸는 환상이다.

이상형을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타나토노트를 인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나야라고 말했을 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이건 사실 대답도 아니고, 어쩐지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운명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만날 사람은 결국 만난다면 우리에게 어떤 고민이 필요하겠는가,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백 프로의 확신이 생길지 의문이다. 대부분은 결국 결단과 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러브>를 보면 거스와 결혼을 앞둔 미키에게 친구가 충고한다. 결혼을 결정할 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해서 통과하면 하라는 것이다.

(1) 재미있을 것, 서로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즐거울 것,

(2) 서로 존경할 것, 서로 존중하고 있는가,

(3) 속궁합이 맞을 것

이 세 가지가 다 좋다면 배우자로서 적합하다고 말하는데 일면 살펴볼 만한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양귀자의 <모순>에서 안진진은 불행해 보이는 어머니와 행복해 보이는 이모를 보고 자신의 배우자를 결정한다. 어머니와 이모는 쌍둥이 자매인데 결혼을 경계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쓸모없는 아버지의 뒷바라지와 자식들의 양육을 위해 시장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엄마와 능력이 있는 이모부와 잘난 자식들 속에서 하나도 걱정 없이 사는 이모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안진진은 가망 없어 보이지만 더 사랑하는 김장우와 모든 것이 탄탄해 보이는 나영규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한다.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하던 안진진에게 갑작스레 비보가 날아온다. 이모의 자살이다. 다음은 이모의 유서다.

 

,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마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아 버린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 하고, 말 안 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에서 평온하게 말고.

 

배부른 마나님의 투정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불행해 보여도 불행한 것이 아닐 수 있고, 행복해 보여도 행복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시사점이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모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안진진)의 선택은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좀 더 사랑이라 여겨지는 비전 없는 김장우와 결혼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모의 죽음으로 오히려 안진진은 능력 있는 나영규와 결혼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 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여졌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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