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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이상한 나라의 폴

by 이서말 2022. 2. 28.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 현실이 희미해진다. 시간이 멈춘다. 적막한 동굴에 들어와 있는 듯 주변에 소리가 사라진다. 다른 세계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예감 같은 것이 있다. 일이 시작되기 전에 보이는 작은 징조들. 처음에는 무의미한 단서였지만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점차 뚜렷한 증거가 됐다.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흥분도 동시에 느낀다. 지금까지 버텨냈으니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능숙한 베테랑이 될 수 있다. 저쪽 세계가 가까워지면 냄새가 난다. 강한 아드레날린의 냄새다. 짐승들의 냄새. 크고 작은 야수들이 뿜어대는 욕망, 살기, 공포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향기도 있다. 이색의 느낌 좋은 냄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진서는 수차례 경험했다. 사냥꾼이 되느냐, 사냥감이 되느냐, 그것은 진서의 선택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죽지않기 위해 사냥감이 되어 도망다녀야 한다. 적이 누구냐, 그 적이 맞부딪쳐 이길 수 있는 상대인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지난번에 통했던 규칙이 이번에는 전혀 먹히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빠른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 느껴지는 것은 소리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가까이 짐승들의 으르렁대는 소리, 숨소리, 발자국 소리. 아직 주변의 시야는 밝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느껴진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냄새는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느껴지는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다. 강한 냄새와 소리를 느꼈어도 막상 전이됐을 때 주변 가까이 짐승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다른 세계를 온전히 느끼게 되면 그 장소는 한적한 숲이나 시골길인 경우가 많다. 주변에 다른 존재나 짐승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전쟁 한복판에 소환돼 정신 차리기가 무섭게 도망다니느라 바빴을 때가 있다. 
 
  도대체 왜 끝도 없이 소환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 세계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그것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이유도 알 수 없이 계속 끌려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이유라는 것은 없는 것인가. 가이드는 이 세계에서 당신을 소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 세계의 목적성과는 별개로 진서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계속된 소환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그 목적이 그가 이뤄야 할 미션일지 모른다. 무려 3년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되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점점더 능숙한 이세계 여행자가 되어가지만 희망은 오히려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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