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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선행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

by 이서말 2022. 3. 30.

  좀비는 내게 매력적인 괴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좀비가 그다지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최대 장점은 생명력과 숫자입니다. 생명력이라는 말을 좀비에 붙이려니 우습기는 한데 팔다리가 잘려도 심지어 내장이 튀어나와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인간을 추적하는 특징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수식어라 생각됩니다. 느리고 멍청해서 소수가 있을 때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지만 압도적인 숫자로 인간을 밀어붙일 때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더운 지방이나 더운 계절에 좀비가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파리와 구더기가 포식하고 그 시체가 썩어 뼈만 남는데 한 달 정도면 충분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 한 철만 지나면 걸어 다닐 수 있는 좀비는 없을 겁니다. 살이 썩어 근육들이 남아있지 않겠죠. 그리고, 좀비는 스스로 번식할 수 없으므로 인간을 물어뜯어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생존자의 숫자가 작아지면 좀비 역시 감소하고 수적 우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수명은 짧고 출산은 제한된 괴물이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겠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인간이 되겠죠.

 

  <워킹데드>는 좀비가 창궐하고 문명이 소멸한 시기의 생존자들을 다룬 미드입니다.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합니다. , 식량, 의약품을 조달하기 위해 마트를 뒤지고 그룹을 이뤄 좀비에 대항합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좀비들은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위험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낯선 사람입니다. 한정된 물자를 놓고 경쟁하는 사람들과의 분쟁이 좀비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딜레마가 미드 초반의 핵심 갈등입니다. 이방인은 착한 사람일 수도 있고, 친구나 가족을 위협하는 악당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착한 사람일 것으로 믿고 이방인을 돕거나 살려주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친구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그들을 무시하거나 더 나아가 제거하는 것이 맞을지.

 

  ‘은 전직 경찰 출신으로 이 미드의 핵심 주인공입니다. 그는 시즌 초반 악당이라 하더라도 생명은 소중하다는 편이었고, 이 문제로 같은 경찰관 출신인 셰인'과 늘 갈등하는데 가족과 동료를 잃는 시련을 겪으면서 이방인을 믿지 못하고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성향으로 바뀝니다. 사람들은 변할 수 있고 그들의 가능성을 믿고 기회를 줘야 하는지, 아니면 돌아와 동료에게 총을 겨눌지도 모르는 상황을 사전에 제거해야 하는지 늘 고민이 됩니다.

 

  이런 갈등은 <워킹데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선행을 베풀 때 비슷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물에 빠진 아이가 있다고 가정하면 급류에 쓸려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요새 문제가 되는 데이트폭력도 섣부르게 도와주러 나섰다가 오히려 폭행 가해자로 처벌받기도 합니다. 폭행 피해자가 연인관계인 가해자를 두둔하고 나서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급박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행동은 종종 자신이 처벌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선한 의도가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의도로 행했던 일이 오히려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고장 난 차를 돕기 위해 갓길에 자신의 차를 세웠다가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이런 일들이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자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위급하게 보여도 절대 돕지 않겠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심지어 신고조차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다수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현상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감수해야 하는 위험의 크기에 비례하여 선행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애완동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생명이 위험한 환자를 위해 수술비를 마련해 주는 선행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술비를 구해주는 선행은 위험부담은 적지만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면에서는 전자와 비교하여 작은 선행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위험부담의 크기는 선행의 난이도 문제라고 보입니다. 용기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요. 위험부담이 크면 클수록 나서기는 어려워집니다. 누구에게도 감히 그 위험을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영웅의 본질입니다. 슈퍼히어로들은 기회가 되면 다시 자신을 공격할 것이 분명한 악당조차 죽이지 않습니다. 악당이 구원받기에 가치 있는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다음에 또 이길 것이라는 자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선행이 나중에 자신을 찌르는 칼날로 돌아온다고 하여도 영웅을 조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본성이야말로 영웅의 본질이겠습니다.

 

  이런 도덕적인 난제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에서도 반복됩니다. 일본인 의사 텐마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출세를 포기하고 살려낸 사람이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악마인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의료행위가 과연 선이었을까 고민합니다. 의사가 부딪히는 문제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의료행위에 자신의 주관을 반영해도 되는지 아니면 모든 가치판단을 멈추고 사람을 살리는 데만 집중해야 하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를 살려내면 수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 분명한 사람도 살려야 하는 것이 선행일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이 선행일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텐마는 자신이 살려낸 사람 '요한'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과거 의료행위에 대해 계속 반복하여 고민합니다.

 

  용의주도하고 현명하게 모든 위험 요소를 피해 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칼날로 되돌아오는 위험을 감수한 선행에도 박수를 쳐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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