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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애프터 신청의 기준

by 이서말 2022. 4. 15.

 

  나이 서른이 되니 주변에서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난리다. 이 나이 먹도록 결혼 못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좋은 여자가 있다고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인지라 빈말인 경우도 있지만, 또 적극 날짜를 잡자는 행동파도 있다. 고객들 뿐 아니라 친구나 친척, 사돈의 팔촌도 연락해 소개해 준다고 제안한다. 온 세상이 뚜쟁이라도 된 듯싶다. 어쨌든 비혼주의 신념은 없는지라 들어오는 소개를 마다하지 않는다.

  많이 들어올 때는 연속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약속이 잡힐 경우도 있다. 그러면 모두 애프터 신청을 할 수 없으므로 선택의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여자는 얼굴이 예쁘고, 어떤 여자는 성격이 좋아 보이고, 어떤 여자는 재미있다. 물론 한번 보고 받는 인상이 정확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시 만날 수는 없어서 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할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확률은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런 것이고 만나다 보면 내가 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그것을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마음 가는 대로가 가장 적당할 수 있겠지만 공평하지 않다. 더구나 그런 주관적인 선택은 나중에 분명 후회한다. 내 마음이라는 것은 선택의 순간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이 뭔가요?”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결정하기로 정했다. 고상해 보이지만 특별한 뜻은 없다. 물론 내가 독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배우자도 독서를 좋아해야 한다는 그런 주의도 아니다. 저런 질문을 고른 것은 그저 우.... 어쨌든 저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1차 탈락한다. 아예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그들은 다소 당황해서 요즘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거나 당당하게 책보다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라도 더 이상 책에 관해 이야기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두 번째 부류는 조금 책을 읽는데 지금은 읽고 있는 책이 없는 경우다. 그냥 솔직하게 지금 읽는 책은 없지만 재밌게 읽은 책은 이런저런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 거론되는 책들이 내가 읽지 않은 것이거나 내 목록 중 희귀한 쪽이면 통과다. 아무래도 이후의 만남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개될 확률이 높다. 요즘 읽는 책을 바로 대답하면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통과한다. 어쩌면 그중에도 독서를 즐기는 부류가 아니라 우연히 지금 보고 있는 책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책이라는 것이 천차만별인데 독서를 한다고 다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성공 서적, 실무 서적을 읽고 있는 예도 있다. 이런 책을 읽고 있어도 통과시켜야 하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 기분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애프터 신청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 의미는 내가 고민하여 다양한 상황과 장단점을 파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탈락을 결정하면, 그날 하루 맘 편히 즐겁게 놀고 돌아온다. 물론 다음에 또 만나지 않는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의외로 이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은 적다. 다섯 명에 한 명 정도다. 적당한 비율이다. 그 정도면 겹치지 않고 다음 만남을 약속할 수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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